Imaginal Disk 커버를 처음 본 건 신보 소식 뜨자마자였다. 듣기 전이었는데, 이미지만 보고 어떤 음악일지 바로 그려졌다. 넓고, 신스가 화려하고, 신비로울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한참 지났는데 이 이미지가 계속 생각난다. 왜 좋은지 말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시선이 제일 먼저 간 건 손이었다. 악마의 손. 손톱이 길고, 알루미늄색이고, CD의 반사면이랑 같이 금속 광택이 이미지를 지배한다. 이 손이 평범한 사람 손이었으면 이 커버는 별로였을 거다. 금속이니까 좋다. 소라야마 하지메가 크롬 로봇에 에로티시즘을 입혔을 때 작동하는 게 이거다 — 따뜻한 피부 위에 차가운 금속이 있으면 뇌가 두 감각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긴장이 생기고, 그 긴장이 매혹이 된다. 이 커버에서 그게 일어나고 있다. 예쁜 얼굴, 드러난 어깨, 그 위에 알루미늄 빛 악마 손. 무섭지 않다. 섹슈얼한 마녀 같다고 하면 가장 가까울 것 같다.

이마가 갈라져 있는데 무섭지 않다. 부서지는 게 아니라 뭔가 되어가는 중처럼 보여서. 실제로 앨범 제목인 'imaginal disc'는 곤충이 번데기 안에서 완전히 녹았다가 새 몸을 만들 때 쓰이는 세포 구조의 이름이다. 갈라진 이마는 상처가 아니라 탈피다. 원래라면 불편해야 할 이미지인데 — 색감이 충분히 부드럽고, 구도가 우아하고, 전체 톤이 몽환적이어서 뇌가 "이건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로 읽는다. 경계선 위의 이미지가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한 이미지보다 오래 시선을 붙잡는다는 걸 이 커버가 증명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손의 구도는 성화에서 봤던 그거다. Mica Tenenbaum도 인터뷰에서 이 커버를 "spiritual iconography — 종교적 도상학 같은 것"이라고 했다. 직관이 맞았다. 다만 나는 이걸 신성함보다 유혹 쪽에서 읽었다. 축복보다는 의식, 경건보다는 관능. Mica의 뉘앙스와 내 느낌 사이에 약간의 간극이 있는데, 그게 이 커버가 좋은 이유 중 하나다 — 하나의 정답을 코딩해놓은 이미지가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다른 층위에서 끌리게 만드는 이미지라는 것. Mica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도 괜찮다"고 했다.

소라야마 하지메를 떠올린 것도 나의 연상이다. Magdalena Bay의 실제 시각 레퍼런스는 SF 영화, 초기 인터넷, Jacques Demy 같은 테크니컬러 판타지 영화 쪽이다. 아티스트의 의도와 내 감상이 핵심에서는 만나고 세부에서는 갈라진다 — 그리고 이게 열린 이미지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CD라는 매체 선택도 좋다. 이미 죽은 기술인데, 여기서는 머리에 삽입되는 초월의 도구다. 과거의 기술로 미래를 상상하는 느낌. 비평가 Bruce McCall은 이걸 "faux nostalgia"라고 불렀다 — 실현된 적 없는 미래에 대한 향수. 이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의 기술이 불안(AI, 감시, 알고리즘)과 결합되어 있을 때, CD가 환기하는 시대의 기술은 아직 약속이고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해를 끼치기 전의 기술이 주는 온기. Magdalena Bay도 Neopets, CD-ROM 게임, 90년대 말 인터넷을 핵심 영감으로 꼽는다. Lewin은 그 시절을 "마법 같은 탐험의 공간"이라고 회고했다.

Mica는 인터뷰에서 "모든 게 음악에 기반했고, 음악을 들으며 뭐가 떠오르는지가 출발점"이라고 했다. 커버가 음악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것. 그래서 이 커버를 보면 소리가 들리는 거다 — 직감이 아니라 이 이미지가 음악에서 역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앨범 커버는 소리를 예감하게 만든다. 이 커버는 그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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